"엄마 생일선물로 금메달 따올게"…약속지킨 도경동 펜싱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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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방문한 오성고 펜싱 훈련장 2층의 전경. 펜싱 훈련에 필요한 기물들이 펼쳐져 있다. 15년 전 만들어진 이 훈련장에서 도경동 선수가 역량을 길렀다. 정두나 기자
손때가 묻은 펜싱 마스크가 줄을 지어 놓여있다. 이승용 감독은 "충분히 수리해 사용할 수 있는 마스크여도, 후배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놓고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두나 기자
"엄마 이번 생일 때 내가 금메달 따올게. 그게 생일 선물이야." 도경동(국군체육부대) 선수가 출국 전 어머니 신모(59) 씨에게 한 말이다. 경북 영천에 사는 신 씨의 생일은 7월 29일이다. 매년 생일 즈음 대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도 선수는 메달을 따오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이번엔 신 씨의 생일선물로 '올림픽 금메달'을 가져오게 됐다.
신 씨는 중학교 2학년 때 펜싱을 시작한 아들에게 충분히 지원해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다. 신 씨는 "고등학교 때까지 집에 에어컨이 없었다. 운동하고 땀 흘리고 돌아오면 에어컨도 못 틀어주고 등목만 시켜준 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펜싱을 시작하고서는 성적이 부진하거나 혼날 때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도 "그만 둘 거냐"는 신 씨의 물음에 도 선수는 "계속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끝까지 왔고 지금의 '영광'이 있었다.
1일(한국시각) 도 선수가 금메달 획득 직후 어머니의 SNS에 '엄마 사랑해'라고만 답장을 보내왔다. 신 씨는 "밤새도록 울다가 '너는 공인이니까 사람들 앞에서 너무 어깨를 펴지 마라. 선배들, 후배들이 있어 다 같이 한 게임이다. 항상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겸손하라'고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
신 씨는 도 선수가 귀가하면 "그냥 한 번 꼭 안아주고 집밥을 해주고 싶다. 평소 좋아하는 소고기 구이와 갈치조림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고교 진학 후 실력 급성장
이승용 오성고 펜싱 감독. 본인 제공
중학교 때 또래에 비해 키가 작았던 도 선수는 대구 오성고로 진학한 후 키도 크게 자라고 실력도 급성장했다. 이승용 대구 오성고 펜싱 감독은 "야간 훈련을 스스로 하는 등 상당히 운동에 열심이었다. 기본기가 탄탄했기에 체급과 연습이 뒷받침되자 기량은 급격히 좋아졌다. 펜싱팀 동기 중에 성적도 가장 우수했고 고 3 때 전국대회 우승을 두 번이나 했다"고 회상했다.
이 감독은 "도경동은 팔과 다리가 길다. 오성고 동문 선배인 구본길도 비슷하다. 둘의 또 다른 공통점은 '어떻게든 성공하려고 악착같이 노력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오성고 펜싱팀 후배들은 선배가 하는 걸 많이 흉내내며 배운다. 이 감독은 "자연스럽게 운동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흔들리는 선수는 없었다. 도경동은 특히 잘 하려는 강박관념이 강했다"고 말했다.
도 선수 어머니가 아들에게 당부한 '겸손'은 오성고 이 감독이 늘 강조해온 덕목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도경동에게 금메달을 딴 뒤에도 '경거망동하지 말고 항상 겸손하게 하라.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훈련장 벽에 오성고 출신 펜싱 선수들의 활약이 담긴 기사가 전시돼 있다. 정두나 기자
◆포기 모르는 심성이 금메달 비결
구본길 선수와 도성동 선수의 모교인 오성고는 대구에서 유일하게 학생들에게 펜싱을 지원하는 학교다. 구 선수와 도 선수는 10살 터울로, 오성고 동문 선·후배다. 두 선수가 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펜싱이 비인기 종목인 데다가, 수도권도 아닌 터라 선수층은 얕았다. 결국 의지할 곳은 선후배와 오성고 펜싱 선수단 지도부 뿐이었다.
1일 오후 2시에 찾은 오성고 펜싱 훈련장 천장 선반에는 선배들이 두고 간 펜싱 마스크가 셀 수도 없이 들어차 있었다. 벽에는 구 선수가 메달을 땄을 때 착용했던 마스크와 선배 선수들의 트로피가 진열돼 있다. 이런 모습에서 엿볼 수 있듯이 도 선수가 선배 선수의 활약상을 밑거름으로 꿈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종종 구 선수가 학교로 찾아와 훈련 노하우를 전수하면, 도 선수는 구 선수의 조언을 그대로 따라하는 '복사기'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도 선수는 한때 종목 선택을 놓고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럼에도 주변 선생님은 도 선수가 새벽부터 진행되는 훈련을 해내고, 오전 수업을 묵묵히 마치는 근성을 자랑하는 학생으로 기억했다. 최송호 오성고 교장은 "운동부 학생인 탓에 별나고 혈기 왕성한 모습을 자랑했을 거라고 오해하지만,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흔한 다툼도 없이 조용히 학교 생활을 마쳤다"고 했다.
동시에 최 교장은 도경동이 포기를 모르던 학생이라고 강조했다. 최 교장은 "키가 커야 한다며 수업 외 시간에 근력 운동을 하고, 틈이 날 때마다 일부러 낮잠을 자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만약 펜싱을 그대로 포기했다면 키가 컸어도 지금의 도경동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구 선수의 활약상이 도 선수의 훈련 동기가 되었듯이 도 선수의 연습벌레 기질은 후배 선수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최 교장은 "선배의 활약상에 자극받은 후배들도 자연스럽게 야간 훈련에 나서고 있다. 스스로 결점을 찾고 실력을 갈고 닦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앞으로 더 뛰어난 후배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